128년이 넘도록 허시는 초콜릿과 동의어였다. 허시의 상징인 포일로 싼 키세스부터 작게 조각 내 먹는 커다란 초콜릿 바, 우유에 타거나 아이스크림에 뿌리면 딱 좋은 초콜릿 시럽까지 허시의 제과 제품은 대대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초콜릿은 물론 다양한 브랜드와 맛, 크기, 포장, 제품의 달콤한 간식거리를 혁신해 전 세계 주요 지역에 퍼뜨렸다. 허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캔디 회사이며 해외 비즈니스도 수익을 내며 성장하고 있다.
5년 반 전 허시의 CEO가 됐을 때 나는 허시가 캔디 회사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품었다. 그때부터 야심 찬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대담하고도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제품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해 허시를 스낵 분야의 강국으로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그런 다음 글로벌 운영을 효율화하고, 핵심 부문을 강화하고, 더 용감한 조직문화를 개발하고, 일련의 다각적 인수를 실행해 이 전략을 실현했다. 우리는 더 기업가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민첩해지는 법을 배웠다. 혼란을 성장하기 위한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허시의 시장가치는 2배 이상 늘었고 매출은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허시의 역사
허시는 1894년 밀턴 허시Milton Hershey가 최초로 세운 랭캐스터 캐러멜Lancaster Caramel의 자회사로 시작했다. 그때까지 사치품이던 초콜릿을 더 저렴하고 접하기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밀턴 허시는 1900년 캐러멜 사업을 매각하고 초콜릿에 승부를 걸었다. 이 모든 게 허시의 초콜릿 바에서 시작됐다. 키세스는 1907년, 미스터 굿바는 1925년에 출시됐다. 1927년 허시는 뉴욕주식거래소에 상장했다. 사업 초기 밀턴 허시는 펜실베이니아 주 허시 시(市)가 될 지역의 유력사업가로서만이 아니라 자선사업가로서도 유산을 확고히 세웠다.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아동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고, 후에 이를 영속적으로 지원할 자선신탁도 세웠다. 대공황 시기와 군인들을 위해 야전 전투식량 DField Ration D를 개발했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초콜릿 제조시설과 주변의 대형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