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 Work
작곡가
존 애덤스John Adams
“저는 정원사나 다름없어요. 떠오른 아이디어를 키우기도 하지만 어디를 다듬고 무엇을 뽑아버려야 할지도 알죠.”
이 시대의 뛰어난 클래식음악 작곡가로 손꼽히는 존 애덤스에게 테러리즘, 핵전쟁, 정치는 작품에서 다루는 일부 주제일 뿐이다. 그는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개인 스튜디오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무대를 오가며 최근에 초연한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들(Girls of the Golden West)'을 비롯해 70편이 넘는 작품을 선보였다.
인터뷰어 앨리슨 비어드Alison Beard
HBR: 선구적 위치에 머물면서도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는 어떤 비결이 있나요?
애덤스:글쎄요. 클래식음악은 비욘세 같은 스타에겐 있는 고정 관객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고정적으로 제 음악을 들어주는 훌륭한 청중을 만날 수 있어 큰 행운이었죠. 흔히들 얘기하는 ‘선구적’ ‘혁신적’이란 말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을 만나고 거기에 반응합니다. 그게 정치건 역사건 현재 미국인의 심리건 간에 말이죠. 가만히 앉아서 “한계에 도전하거나 파격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말만 해선 되는 일이 없거든요.
선생님의 첫 대형 오페라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은 큰 변화로 기록됐는데요.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겠다는 확신을 하셨어요?
제 생각엔 오히려 어느 정도 무지했기에 가능했던 일 같습니다. 저는 오페라를 해본 경험이 없었거든요. 독창곡을 만든 적도 전혀 없었고요. 하지만 닉슨과 마오가 만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 강렬했습니다. 시장경제와 공산주의 사상의 충돌을 탐구하는 작업은 아주 즐거웠죠. 게다가 논란이 많은 내용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자극했어요. 물론, 그 작품에 상당한 혹평이 쏟아졌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어 버립니다. 뉴욕타임스는 “애덤스가 창작한 아르페지오는 맥도날드가 만든 햄버거나 다름없다”고 비평했어요. 제가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실제로 그런 혹평이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타임과 피플 같은 매거진은 열을 올리며 그 작품을 논하고 싶어했죠.
그런 대서특필을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제 나이가 일흔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아기 걸음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아픈 경험으로 배웠죠. 제가 처음 끄적거리고 시도하는 내용을 보면 늘 창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동안 받은 모든 상과 영예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을 보면 방 안에 앉아 레고 블록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만들려고 애쓰는 유치원생 같아요. 만일 그런 제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두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술계에선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려 그 아이디어로 본인을 브랜드화한 뒤, 비슷비슷한 결과물만 계속 내놓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저에게 그런 행위는 죽음과 다를 바 없어요. 저라면 6개월이나 2년 정도 고생해서라도 진정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겁니다.
얼마나 더 활동할 계획이신가요?
브람스는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공표했지만, 저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마치 “저는 다음주에 숨을 거둡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제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다는 말을 들을 때,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번역: 허윤정 / 에디팅: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