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 금지를 담은 미국 연방 민권법이 시행된 지 6년 후 태어난 잭슨은 백인이 대부분인 고등학교에서 토론 챔피언이자 학급 회장이 됐다. 그는 대학 지원서에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 되겠다고 썼다. 하버드대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한 후 30년 가까이 변호사와 판사로 일한 끝에 2022년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가 쓴 회고록 <Lovely One>이 최근 나왔다. 인터뷰어 앨리슨 비어드
“난해하면서도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건들이 대법원에 옵니다. 매우 도전적이고 주목도가 높은 것이 우리 일의 기본이죠.”
HBR:한 세대 만에 인종 분리에서 대법원까지 온 것은 큰 도약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어떻게 그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나요?
브라운 잭슨:지역사회와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던 부모님의 경험이 제가 더 많이 참여하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한 요인입니다. 어머니는 수영 강습이 있으면 저를 강습에 참여시켰어요. 청소년 축제에서 연설 기회가 있으면 제가 하길 원하셨죠. 요컨대 이런 사고방식이었어요. “우리가 참여 하지 못했던 모든 기회가 우리 딸에게는 있다. 기회의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자.”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감을 가지며 주저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고 성취하도록 북돋는 동기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몇 안 되는 흑인 학생 중 한 명으로 ‘눈에 띄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게 도움이 됐나요, 아니면 상처가 됐나요?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기 때문에 상처보다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소수의 유색인종 학생 중 하나로 교실에 들어가거나 토론 투어에 참가하고, 게다가 끝내주는 성과를 낸다는 것은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게 된다는 걸 의미했어요.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주눅 들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했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면 “난 이걸 장점으로 활용하겠어”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