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의 신세계
한때 경영계에서 말하는 정치적 리스크는 꽤 구체적인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한 국가가 다국적기업의 사업 영위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위험을 의미했죠. 독재자가 기업의 자산을 몰수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돌리자 라이스와 에이미 지가트가 함께 쓴 ‘21세기의 정치 리스크 관리’를 보면 이 용어의 정의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두 사람은 책에서 “오늘날 한 국가 안과 국가 간에 존재하는 정치적 리스크의 상당 부분은 국가 이외의 행위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개인, 시조례(市條例)를 공포하는 지방관료, 트럭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리스트, 제재를 집행하는 유엔 직원 등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라이스와 지가트는 세 가지 요인이 새로운 위협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비즈니스 자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요소들과 비슷합니다. 첫째, 지정학적 상황이 단순한 자국우선주의의 부상이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점차 더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수십 년간 두 개의 초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맹국과 적국을 꽤 분명하게 나눌 수 있었고, 무역정책과 안보정책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습니다. 그런 시절은 끝났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떠오르는 국가, 쇠락하는 국가,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거기에 테러단체, 사이버 범죄자 같은 비(非)국가 활동세력까지 가세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불확실해졌다”고 두 사람은 주장합니다.
둘째, 기업의 공급망이 점점 확장되고 린 매니지먼트가 도입되면서 효율성이 증가했지만 동시에 취약한 지점의 수도 늘어났습니다.(위에서 언급한 ‘지정학적 상황’ 참고) 일례로 2014년 중국이 석유시추선을 베트남 인근 해역으로 옮기자 호치민 시 근처에서 반중 시위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이 지역의 수많은 제조업체가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 여파로 홍콩에 본사를 둔 세계적 물류업체 리앤펑으로 보내기로 했던 장난감과 의류의 공급이 막혔죠. 라이스와 지가트는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난 영해 분쟁으로 인해 미국 내 여러 도시에 있는 매장들의 진열대가 빠르게 비워졌다”고 책에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증대에 크게 기여한 IT기술(위에서 언급한 ‘공급망’ 참고)도 불안을 유발하는 요인입니다. 특정 브랜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기술의 힘을 빌려 얼마나 강력한 집단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학교 총기참사를 계기로 촉발된 전미총기협회 보이콧운동(#BoycottNRA)에 많은 기업이 휘말린 일을 예로 들 수 있죠. 휴대전화에 찍힌 동영상 한 편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면 즉각적인 움직임을 촉발시킬 수도 있습니다.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에 탄 승객이 기내에서 끌려 나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자 이 항공사 시가총액이 무려 2억5500만 달러나 떨어졌습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극히 드물 것 같지만,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발생한 어떤 정치적 리스크가 여러분의 회사를 휘청거리게 만들 확률은 놀랄 정도로 높습니다. 라이스와 지가트는 이런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상당히 간단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더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이제 정치적 리스크 관리는 전략적 필수요건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위협을 가할 장본인이 한 국가의 지도자일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쥔 청소년 한 명일 수도 있습니다.
편집장 아디 이그네이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