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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관리

바쁨 중독을 경계하라

매거진
2023.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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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MANAGEMENT

바쁨 중독을 경계하라
근로시간이 곧 업무성과라는 착각에서 탈출하기 



내용요약

문제

직장인은 누구나 바쁘다. ‘시간 빈곤Time Poverty’과 스트레스로 회사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직원들은 번아웃에 시달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면 좋은 실적이 나온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

우리 기업 문화는 ‘바쁨busyness’을 숭배한다. 심지어 이런 문화가 주는 장기적 피해를 공공연히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조건반사적으로 초과근무를 한다. 빈둥거림을 경시하는 분위기, 바쁘게 일하는 순간 차오르는 만족감, 자신의 노력을 정당화할 필요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안

경영진이 나서 직원들이 ‘딥 워크deep work’를 할 시간이 있었는지 감사한다. 유급휴가 의무화, 실적 기반 보상 제도, 바쁨이 아닌 웰빙을 권장하는 행동 솔선수범하기, ‘느슨한’ 시스템 도입을 통해 더욱 회복탄력적인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필자는 2019년 저서 (국내 미출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한 남자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영어를 잘 못했던 그는 이민 초기 ‘바쁘다busy’라는 말의 뜻이 ‘좋다good’인 줄 오인한 채 생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사람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물을 때마다 번번이 “바쁘네요”라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성과 코칭 기업 힌트사Hintsa 최고운영책임자COO 노라 로젠달Nora Rosendahl이 실시한 소규모의 사회과학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로젠달이 “잘 지내나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일주일 동안 기록한 결과를 보면 거의 10명 가운데 8명이 “바빠요”라고 대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학계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갈수록 얼마나 더 숨 가쁘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명절 인사의 글귀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1960년대 이후 “미친 듯이 바쁘다”라고 신상을 토로한 내용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애슐리 윌리엄스Ashley Whillans가 갤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고 답한 미국 내 직장인의 비율이 2011년에는 70%였다가 2018년에는 80%까지 늘어났다.

사회과학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활용할 시간이 부족한 현상을 가리키는 ‘시간 빈곤Time Poverty’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고 각각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바쁨을 찬양하는 기업문화가 일부나마 이에 기여했고, 다행인 점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를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이제 바쁨은 신분을 상징한다. 컬럼비아대 마케팅 교수 실비아 벨레자Silvia Bellezza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바빠 보이는 사람들과 블루투스 헤드셋을 착용하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등 바쁜 사람이 흔히 쓸 법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중요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고 여기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리학자 재레드 셀니커Jared Celniker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한국 사회 전반적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가리켜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이 실제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는 무관하게 말이다. 과거와는 아주 다른 양상이다. 사회학자 조너선 거슈니Jonathan Gershuny는 “여가가 아닌 일이 이제 높은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지표가 됐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Gordon Gekko가 이를 조금 더 단순명료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점심은 찌질이들wimps이나 먹는 거지.”

이제 기업들도 더는 바쁨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바쁨을 찬양하는 소리가 쏙 들어간 지 오래다. 톡톡 튀는 창의성을 가지고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면서 ‘얼마나 바쁘게 일했는가?’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잘못해도 한참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이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이는 직원들만 승진시키고 보상한다. 이는 기업과 직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보상 부여의 결정적 기준이 근무시간이며 근태를 과도하게 감시하는 경우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의 피로감이 커지면 이직률이 늘어나 회사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설령 이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업무 참여도가 낮아지고 결근이 잦아져 회사 입장에서 손해가 크다. 직원들 건강도 나빠진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로하면 뇌중풍과 심장병 위험은 물론 사망 위험까지 커진다. 이와 반대로 직원 본인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으로 연구됐다.

필자는 ‘바쁨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관리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린 자세로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용 시장이 경색되면서 직원 측 협상력이 커진 것도 영향이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터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모두가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결과, 시대정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틱톡에서 마음만은 퇴사를 외치며 주어진 최소한의 업무만을 처리하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에 대한 영상이 유행하면서 한동안 언론에서 앞다퉈 이를 다뤘다. 확실히 뭔가 변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 학계 전문가들이 조사한 결과와 더불어 인간적이면서 생산적인 직원 시간관리 방법에 대한 필자의 기업 대상 컨설팅 경험을 종합한 결과, 오늘날 지식경제 구조에도 왜 바쁨 중독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지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이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업이 시도할 만한 몇 가지 실용적인 대안도 소개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바쁨을 찬양하는가

유명한 사회심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일에 많은 수고를 들이면 들일수록 그 일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이를 가리켜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라고 한다. 심지어 그 일이 무의미할 때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많은 노력이 요구되면 요구될수록 이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가령 밤을 새워가며 장시간 일해야 하는 신입사원은 스스로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다니 이 회사에 정말 다니고 싶었나 보다”라며 철야를 정당화한다. 문제는 그와 동시에 번아웃이 오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바쁨 문화는 한번 고착되면 돌이키기 어렵다. 1998년 경영학자 블레이크 애시포스Blake Ashforth와 이츠하크 프라이드Yitzhak Fried가 발표한 유명한 아티클을 보면 조직행동의 상당수는 별생각 없이 이뤄진다. 생산 담당자는 ‘자동 모드’로 일하고, 일반 직원들은 정말 효과적인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기존의 규칙과 절차를 따른다. 관리자들이 직원을 채용하고 승진시키는 판단 기준도 알고 보면 근거가 한없이 얄팍하며 심지어 직원의 첫인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관리자들이 조직의 고유한 지식과 문화라고 여기는 것들도 대개는 그냥 악습에 불과하다.

과거 필자의 컨설팅 클라이언트이자 현재 핀테크 기업인 어피니페이Affinipay 의 CEO 드루 암스트롱Dru Armstrong은 때때로 “바쁨 중독이 회사의 근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라고 털어놨다. 다시 말해 경영진이 별도로 전략을 세워 근절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대체로 직원들은 바쁨 중독 문화를 자연스러운 회사의 일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드루는 “확실한 전략적 우선순위가 없는 조직을 보면 직원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준으로 끝없이 일을 만듭니다”라며 “당신이 ‘무엇을 최우선으로 삼고 공략해야 한다’라거나 ‘이제 가격에 집중해야 할 때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회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음, 안 돼요. 지금 너무 바빠 정신없거든요’ 하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바쁘다고? 대체 뭘 하고 있는데?’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 것이죠”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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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차원에서 ‘바쁨’을 장려할 때 일선 직원 사이에서 반발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비생산적으로 일하면 장기적으로 어떤 손해가 있는지 뻔히 알더라도 한가로이 있는 상황을 절대 못 참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티머시 윌슨Timothy Wilson의 연구팀이 실시한 유명한 실험결과를 보자.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실에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 스스로를 감전시키는 편이 낫다고 선택했는데, 이중 남성은 67%, 여성은 25%인 것으로 드러났다. 분명 실험실에 입실하기 전만 해도 전기충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고 답했지만 일단 실험실에 할 일 없이 홀로 남게 되자 견디기 괴로워하며 무엇이든 소일거리라도 하려고 애썼다.

행동과학 교수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가 이끄는 연구팀의 ‘나태함 혐오idleness aversion’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15분 동안 빈둥거리기보다는 어떻게든 바쁘게 보내고 싶어 했다. 왜 빈둥거리면 안 되는지 빈약한 근거를 쥐어짜 내 만들고, 팔찌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는 등 무엇이든 하려 했다.

심지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는데도 ‘나태함 혐오’ 분위기는 여전하다. 관리자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표준이 되면 직원들의 업무 태도가 방만해질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오히려 재택근무를 하는 미 노동자들의 팬데믹 초기 몇 달 동안 근무 시간을 보면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줄어들었는데도 이전보다 더 길게 근무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바쁘게 지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불필요한 업무의 발생과 기존 업무 처리의 지연으로 이어져 결국 번아웃을 초래하고 만다.

회사는 왜 ‘바쁨’을 높이 평가하는가에 대한 마지막 이유로 고객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상당수의 경우 고객 역시 노력과 가치를 동일시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간단한 실험이 하나 있다.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시나 그림, 갑옷 등 다양한 물건을 보여준 다음 품질과 가치를 평가해달라고 했는데, 참가자들은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에 더 높은 가치와 품질, 선호를 표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조직운영 교수 라이언 W. 뷰엘Ryan W. Buell이 카페테리아를 찾은 손님들의 서비스 만족도를 연구한 결과, 똑같은 샌드위치라도 눈앞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배달했을 때보다 서비스 만족도가 더 높았다. 마치 공사 현장의 십장이 클라이언트가 오고 있으면 일꾼들에게 “빠릿빠릿하게 일 못하나”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때때로 부하직원들을 바쁘게 부리는 것도 상사의 일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객이 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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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경로를 뒤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채찍질을 그만두려면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5가지 방법은 바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털어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단순히 일한 것만으로 보상할 게 아니라 실적에 따라 보상한다 ‘낸 만큼 받는다you get what you pay for’라는 옛말이 있다. 노력에 따라 보상을 준다고 하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 않는다. 텍사스대 회계학 교수 에릭 챈Eric Chan 연구팀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애너그램 퍼즐 풀기 같이 각자 타고난 재능을 이용하되 협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작업을 주고 결과가 아니라 여기에 쏟은 시간에 비례해 보수를 주겠다고 하자, 작업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적극성과 성과는 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공평한 보상 시스템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스템을 적절히 설계한 경우에도 효과성은 떨어졌다. 서퍽대 르네 랜더스Renee Landers가 주도한 법률 전문가에 관한 저명한 연구를 보면 로펌들은 소속 변호사들의 승진 기준을 (클라이언트에게) 청구 가능한 근무시간으로 잡는 경향이 있고 결국 치열한 경쟁이 당연하게 자리잡으며 많은 변호사가 너무 오랜 시간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과급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직원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여러 위험이 뒤따른다. 경제학자 에드워드 라지어Edward Lazear에 따르면 자동차유리 수리 기업 세이프라이트Safelite가 급여 기준을 시간이 아니라 자동차 앞유리 설치 건수로 변경한 결과 직원 평균 생산성이 44% 증가했다. 하지만 성과에 대해서만 보상을 줘서는 안 된다. 보상을 받는 데만 너무 몰두하다 보면 과로와 번아웃을 겪게 된다. 또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보상 시스템에서는 혁신이 떨어지며 ‘비효율적인’ 헛발질과 실패가 당연한 전제가 된다. 이상적으로는 인풋과 아웃풋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상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게 좋다. 인풋을 고려하는 건 과감히 리스크를 짊어지고 혁신을 시도하도록 하기 위해서고, 아웃풋을 고려하는 건 전체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일부나마 성과의 ‘질’을 반영해 보상한다면 단순히 바쁘게 일했는지 아닌지만 따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딥 워크’ 환경을 조성하고 저부가가치 업무 퇴출 여부를 평가한다 컴퓨터 과학자 칼 뉴포트Cal Newport는 막대한 인지능력을 소모하는 일에 고도의 집중력을 지속해서 발휘하는 것, 이른바 ‘딥 워크deep work’가 가능한 근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세히 설명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데이터 입력, 불필요한 회의, 지출 보고서 제출 등 시시한 일만 무더기로 안겨주며 딥 워크 역량을 선보일 기회는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멀티태스킹을 하는 경우 생산성이 40%나 감소된다. 멀티태스킹을 하면 한 가지 일만 할 때보다 훨씬 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지며 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넘어갈 때 치르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s’이 누적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런 ‘바쁨의 팬데믹’에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다면 단순히 직원들이 놀지 않고 일하도록 만드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업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지 감사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감사는 어떻게 하는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주간 업무 내역을 모두 적은 다음에 얼마나 많은 인지력을 요구하는지, 얼마나 많이 집중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한지에 따라 각 업무에 5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달라고 요청했다. 일단 시덥잖은 업무들(낮은 점수의 업무들)은 무엇인지를 특정하고 나면 관리자들은 이 업무를 아예 없앨 것인지 아니면 보다 효율적인 일로 대체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개인 대출 및 보험 업체 엠티 온라인MT Online이나 IT 기업인 트리하우스Treehouse 같은 일부 회사들은 이메일을 없애고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 변경하기로 정했고 이후 생산성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 스튜디오인 더솔퍼블리싱TheSoul Publishing 같은 회사들은 ‘회의 금지 방침’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할 때 전화 통화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내 스케줄에 맞춰 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느끼면 딥 워크를 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시한 업무를 찾아 퇴출하기에 앞서 회사와 직원들이 보기에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 최근 네덜란드 전자 기업과 위 전략들을 주제로 이야기하자 어떤 직원이 “제가 보기에 통화 금지 방침 같은 것은 좀 터무니없는데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이 직원 입장에서는 전화 통화야말로 여러 명이 동시에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회사의 오랜 전통이기에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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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강제한다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원격근무를 실시하면 직원들이 이를 쉴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관리자들이 오판했던 것처럼 관대한 휴가제도를 도입하면 직원들이 이를 남용할 것이라고 많은 회사가 우려하고 있다. 필자는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동기 부여 관점에서 보는 휴가의 여러 이점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 강의에서 무제한 휴가제도를 채택한 회사들이 있다고 소개했더니 한 기업 간부가 우리 회사에서 무제한 휴가제를 도입하면 너도나도 휴가를 쓰고 영원히 복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보면 무제한으로 휴가를 쓸 수 있어도 오히려 휴가를 적게 쓰는 게 대다수이며 이런 관대한 휴가제를 도입한 회사와 소속 직원들은 이를 익히 잘 알고 있다. 미국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유급 휴가를 모두 소진하지 않는 데다 대부분이 휴가 중에도 일하고 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가 여기저기 반복해서 나온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직원 대다수가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정부는 업무시간 외에는 직원들이 회사에서 오는 업무 연락에 응답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방침의 도입이 정부의 역할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휴가 강제 내지는 유도의 장점을 깨달은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 웰니스 기업 어니스트 파우Honest Paws와 포토앨범 업체 챗북스Chatbooks, 항공사 마케팅 전략기업 심플리플라잉SimpliFlying 등은 의무 유급휴가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 풀콘택트FullContact 등 여러 회사는 휴가 수당을 제공하고 휴가 동안 업무 이메일을 열람하면 이 수당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해 직원들이 진짜 쉴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2014년 독일 자동차 제조 그룹인 당시 다임러Daimler(현 메르세데스-벤츠)는 휴가 중인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자동으로 삭제하는 부재중 이메일 프로그램out-of-office email program을 적용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이메일 발신자에게 당신이 휴가자에게 보낸 이메일이 삭제됐다고 알리고 정말 비상시에만 연락할 것을 권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 회사는 사원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바쁘게 일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잘 지내는지’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지난 20년 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연구결과도 직원들을 일에서 떨어뜨려 놓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와 관련이 깊다. 이 연구팀에 따르면 우리 뇌 부위 중에는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 활성화되는 ‘업무-활성 네트워크task-positive network’와 우리가 휴식할 때 기본적으로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있다고 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서는 현재 상황을 넘어서는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데, 이 네트워크와 업무-활성 네트워크는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다시 말해 일을 할 때(심지어 표면적으로만 바쁘고 하는 일이 없는 때도) 현재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초월적인 상태여야 삶의 의미를 찾고 전문 분야에서의 창의성을 키우며 나아가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을 할 수 있다. 직원들이 성공하고 발전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뇌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방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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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솔선수범한다 ‘바쁨’이 아니라 ‘웰빙’을 중요시한다는 회사의 메시지가 직원의 마음에 정말로 와 닿으려면 상사도 휴가를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대담한 리더는 사무실 불을 밝히며 밤늦게까지 일하는 자가 아니라 쉬는 모습을 보여줘 회사에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키는 자다. 실제로 관리자가 업무량이 성공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줄 때-당연히 휴가를 떠나면서 내 업무를 부하직원들에게 넘기면 안 된다-비로소 직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CEO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규범도 바뀌고 있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두 달 동안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드 기반 사용자 계정관리 업체 업체 옥타Okta의 토드 맥키넌Todd McKinnon 역시 미 캘리포니아 내파밸리Napa Valley로 가서 휴가를 보낼 것이라 알리면서 직원들에게 각자의 휴가 계획을 말해달라고 요청해 모범을 보였다. 그러자 1000명이 넘는 옥타 직원들이 자신의 휴가 계획을 적은 이메일을 보냈다.

필자도 이처럼 리더가 일과 삶의 균형과 직결된 규범을 적절히 세워준 덕을 본 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 내 전공 멘토는 항상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와 있고 늦게 떠났다. 대학원생의 학업이란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느 날 멘토가 내게 오더니 자신이 대학원생이던 시절에 뭔가 집중이 안 되거나 의욕이 나지 않을 때 학교를 박차고 나와 달리기를 했다고 말해줬다. 내가 무척 존경하고 또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워커홀릭인 사람에게서 그런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일과의 단절이 용인될 뿐만 아니라 필수불가결하고 학계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슨함’을 제도로 만든다 ‘바쁨 문화’가 생긴 데는 심리적인 요인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자원의 제약도 큰 몫을 했다. 병원 예산이 삭감된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의료진은 과도한 업무에 짓눌리고 대기시간 장기화와 긴급 환자의 안타까운 사망 같은 일이 초래된다.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면 소비자 불만 대응과 가격 변동 관리, 제품 배송 대안 모색이 어려워진다.

유명한 기업인이자 비즈니스 전략가인 세스 고딘Seth Godin은 “느슨한 시스템이 보다 회복탄력적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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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엔지니어링 교수 리카르도 패트리아르카Riccardo Patriarca 연구팀은 이를 다음과 같이 유형화했다. (1) 자원 증대-더 많은 시간과 돈, 공간, 인력, 장비를 확보한다. (2) 기존 자원의 재배치-이를테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컨벤션 센터를 병원으로 전환한 사례가 여기 해당된다. (3) 유연한 업무 수행-소방대의 사고현장 총책임자가 현장에서 바로바로 새로운 대응법을 채용하는 것처럼 평상시의 표준 운영 절차에서 벗어나 임기응변을 발휘할 역량을 보장하는 것이다. (4) 인력의 중복 채용-동일한 업무를 사람들이 중복해서 맡도록 하고 서로 상대방의 업무를 확인해준다. 가령 원자력발전소는 기술자문관TA이 운영팀 직원과 함께 일하도록 한다.

상당수 회사에 이런 전략들은 명백한 돈 낭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것 같다. 똑같은 일을 할 사람을 왜 한 명 더 뽑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을 관리하고 나아가 모든 직원의 일상 업무량을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두고 싶다면 느슨함은 필수적인 요소다. 자원 구축은 여지껏 그랬듯 많은 비용이 들지만 과도한 부담, 바쁜 업무 스케줄 또는 느린 서비스 때문에 우수한 직원이나 단골 손님을 놓칠 때 궁극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농구팀 감독 존 로버트 우든John Robert Wooden은 “무엇인가를 했다고 해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일전에 말한 적이 있다. 업무량 증대가 항상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아직도 많은 기업이 이 착각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바쁨’에 보상을 주는 기업문화가 대세인 것을 고려하면 이런 실패한 보상 제도를 손보기 위해 시류를 거스르기보다는 편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선택일 뿐만 아니라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관련 연구결과를 보면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24시간 연중무휴 근로가 가능해지고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역량으로 무장하는 등 갈수록 더 많은 직원들이 밀려오는 마감과 스트레스의 압박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정신과 육체는 만신창이다. 기업과 경영진은 바쁨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더는 확산하지 못하도록 앞장서서 저지하며 지속가능한 회사는 물론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애덤 웨이츠(Adam Waytz)는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경영 및 조직 분야 교수이자 심리학자다. 대표 저서로 2019년 출간한 (국내 미출간)이 있다.

번역 노이재 에디팅 이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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