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기업은 신생기업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많은 자원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종종 노트북만 든 괴짜들이 기성기업의 자리를 위협한다.
근본 원인
기성기업은 아이디어를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 아이디어가 충분히 급진적이고 건전하다면 민첩한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의 가치사슬을 흔들 수 있다. 해결책
회사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최고의 사람, 프로세스 및 리소스를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인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독립 스타트업보다 성공할 확률이 2~3배 높다는 증거가 있다.
스타트업과 비교했을 때
기성기업은 상품, 고객층, 오퍼레이션, 라이선스, 유통, 자본 등과 같이 탄탄한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노트북만 든 괴짜 몇 명이 기성기업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왜일까? 기성기업에는 한 가지 중요한 역량, 즉 작은 아이디어에서 거대한 아이디어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기업가적 근력entrepreneurial muscle 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급진적이고도 탄탄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스타트업은 기존 기업의 가치사슬을 흔들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내 자체 벤처를 만들지만 기존 체제에 갇혀 있는 인력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기업가적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보통이다. 혁신을 도모하고자 독립적인 스핀아웃 기업을 만들기도 하지만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 지점에서 기성 기업의 자산과 스타트업의 기업가적 역량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출발한다.
본 아티클에서 필자들은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자산의 가치를 구현하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며 디지털 리더가 된 일부 대기업의 사례를 조명하려 한다. BCG X의 비즈니스 구축 부문 (구 BCG 디지털 벤처)의 도움을 받아 지난 9년 동안 출범한 200개 이상의 벤처를 연구했다. 호주연방은행(체다), 에어버스(UP42), 퍼스트 아메리칸(엔드포인트), AIA(스낵박스), 메르세데스-벤츠(리페어스미스), 폴크스바겐(헤이카) 및 UPS(웨어투고) 등 기성기업이 출시한 사업이다. BCG X가 제공한 벤처기업 표본 중 152개사는 아직 영업 중이고, 14개사는 매각됐으며, 38개사는 문을 닫았다. 이 중 상당수는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 맥킨지의 리프Leap, 스파크옵티머스SparkOptimus, 크리에이티브 닥Creative Dock 등 비슷한 성공률을 보인 다른 기업이 제공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샘플도 연구했다.(예를 들어 2012년 이후 크리에이티브 닥이 출범시킨 66개의 벤처기업 중 55개 사는 지금도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
이 같은 사업 성과는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모델이 효과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또한 BCG의 분석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은 독립 스타트업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2~3배 높다.
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고려해야 하는가?
디지털 기술은 기성기업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출범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호주연방은행 산하 디지털 결제 및 캐시백 보상 스타트업 체다Cheddar의 설립에 기여한 그룹 전략 책임자인 스튜어트 먼로Stuart Munro는 “어느 곳에서나 산업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있다. 고객의 기대와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상품군을 넘어 제품 전반을 폭넓게 바라보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기성기업은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활용해 기존 자산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디스럽터1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전략적인 보완책이 될 새로운 자산을 창출하고, 보다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다.
일례로 위성을 활용해 방대한 양의 고품질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한 유럽의 항공우주 분야 대기업 에어버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디지털 플랫폼 덕에 다른 조직이 에어버스가 보유한 데이터에 접근하는 문턱이 낮아졌고 에어버스는 이를 업계 데이터나 파트너사가 제공한 데이터와 재결합할 수 있었다. 에어버스는 업계 전반에 걸친 플랫폼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UP42를 출시해 이런 기존 자산에 숨어있는 가치를 활용하고 자사뿐 아니라 플랫폼 파트너에도 상당한 신규 수익원을 제공했다. 오늘날 UP42는 전 세계 고객들에게 지리 공간 데이터, 애널리틱스 도구 및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 분야 금융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퍼스트 아메리칸First American 사는 시장을 흔드는 ‘디스럽터’를 막기 위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출시한 경우다. 기존의 느리고 관료주의적인 부동산 거래 체결절차를 우회할 수 있도록 엔드포인트Endpoint를 출시했다. 퍼스트 아메리칸 사의 최고혁신책임자인 폴 허스트Paul Hurs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사업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업가적 재능에 유통망, 데이터, 지식자산을 비롯해 기업이 가진 자산 전체를 결합하려는 생각, 여기서 뭔가 마법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디자인싱킹, 애자일 방법론 등 기업가적 역량의 기초가 되는 요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이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들의 접근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기존 기업은 빠르게 실험을 진행하고 확대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이는 본질적으로 기업을 혁신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 개개인에 특화된 간편한 ‘한입 크기’ 보험 상품을 제공하는 사업인 스낵박스Snackbox의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AIA 호주 지사 CEO 데미언 뮤Damien Mu는 스낵박스를 통해 새로운 업무 방식, 더 빠른 속도, 고객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헌신을 “조직에 전파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최고의 방법은 가장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한 뒤 자율성과 통합성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존 기업과 잘 통합된 스타트업일수록 특권적인 자산에 접근해 핵심 사업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 한편으로는 사업 진행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회사 밖 기회를 놓치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만약 기업의 기존 자산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이나 전략적 보완책을 창출하거나 기존 사업 분야를 흔드는 것이 주된 목표라면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을 통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에어버스가 회사 외부로부터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습득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UP42는 에어버스뿐 아니라 향후 파트너사 어디든 동일하게 잘 작동하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플랫폼으로 운영해야 했듯이 말이다.
반대로 핵심 사업 영역을 혁신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기존 조직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야 한다. 일례로 스낵박스가 AIA를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는 동시에 값비싼 라이선스, 보험 인수 기술 및 상품 관련 파트너십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AIA와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었다. 조직을 통합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기성 기업들은 종종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의 고객이 20명 밖에 되지 않는데도 100만 명 단위의 고객에게 적합한 준법 감시, 규제 등 전사적 프로세스를 준수하기를 원하곤 한다. 언젠가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스타트업이 성공하기에 필요한 속도와 민첩성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만약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저 자원을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필요한 곳에서는 핵심 사업 영역과 통합하고 다른 곳에서는 자율성을 유지하는 균형을 잡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호주연방은행 벤처부문장 토비 노턴스미스Toby Norton-Smith는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여기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벤처사업의 속도가 느려지는) 핵심 사업에 너무 밀접하게 갇혀버리는 문제나 (확장성이 제한되는) 스타트업 판에 너무 깊게 들어가 기존 사업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 말이다. 그 사이의 골디락스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큰 기업들은 거의 항상 자사 직원이 새로운 벤처를 운영하기 원하지만 이는 실수가 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산과 노하우를 기업들이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새롭게 창출할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 기업가적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벤처를 이끌 만한 진정한 기업가를 찾는 것이 필수 과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사례를 살펴보자. 기존 고객 관계를 활용해 수익성이 높은 사후 수리 시장에 진출하고자 벤츠 경영진은 먼저 이 벤처사업을 이끌 자동차 업계 베테랑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이 경험 많은 기업가 조엘 밀른Joel Milne을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자동차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전문가는 필요하지 않죠.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스타트업을 처음부터 구축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이고요.”
밀른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기회를 찾아내 그의 역량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의 성공에 핵심적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초기 계획은 지난 5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고 디지털 기술을 거의 수용한 적 없는 자동차 수리 서비스를 디지털 시장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밀른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런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출시하고 나서야 소비자들이 믿을 만한 정비소를 찾고 나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직접 형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깨달은 밀른은 벤츠가 소비자와 정비소 사이 중개 역할을 하는 대신 이동식 현장 수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그는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주말 동안 트럭을 빌려 정비사를 고용한 뒤 소비자들의 집 마당에서 자동차를 수리해주겠다는 페이스북 광고를 게시한 것이다.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한 밀른은 모바일로 예약할 수 있고 회사 웹사이트에서 비용 견적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현장 수리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했다.
그 결과 탄생한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리페어스미스RepairSmith는 15만건 이상의 현장 수리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순고객추천지수 89%(넷플릭스는 68%) 및 100%에 달하는 재구매 의사를 달성했다. 남부럽지 않을 마진율을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리페어스미스와 관련된 회사의 고위임원 중 한 명은 밀른을 고용한 것이 벤츠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밀른은 스타트업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기술 및 벤처 분야의 인재들과 연결돼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에서 일할 진정한 기업가를 유치할 수 있을까? 자금을 지원하려는 기성기업이 제공하는 안정성은 강력한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리페어스미스에 합류한 이유에 대해 밀른은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의 가장 형편 없는 부분은 계속해서 돈이 바닥나고 항상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방식에서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주요 자산과 자금 외에도 기성기업은 기업가들에게 종종 부족하기 마련인 타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밀른은 명망 있는 브랜드가 뒤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리페어스미스가 사용할 공간을 빌리고 잠재적 파트너에게 연락하는 등 어려운 일들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가는 기성기업 덕분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기회를 얻기도 한다. 물론 기업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절차를 처리해야 하는 등 잃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경험해본 사람에게 기업이 주는 혜택은 매력적일 수 있다.
기성기업에서는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새로운 벤처를 하이브리드로 만드는 또 다른 요소 중 하나는 기업 내부 인력과 외부 인력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내부 인력은 모회사의 자산을 활용하고, 핵심 사업 영역으로 돌아갈 경로를 제공하며, 스타트업에서 학습한 내용을 모회사에 전수하고, 업무를 완수하는 방안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내부 인력은 적절한 인재여야 하고, 외부 인력과 (상급자가 아니라) 동등한 처우를 받아야 하며, 외부 인력과 팀을 이뤄 일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 결국 누가 이런 사람일까?
먼저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지식 중에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후 사내 인력 중 이런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기업가처럼 일하는 방식을 학습할 수 있는 직원을 찾아야 한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을 팀에 영입하고 시간을 100% 이 프로젝트에 할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을 위해 부진한 인력은 피해야 한다. 그들을 팀에 붙잡아 두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퍼스트 아메리칸의 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존 사업의 보험 상품 공학이나 영업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 중 상당수가 (벤처 사업에) 합류하는 아이디어에 엄청나게 매료됐다. ‘정말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기는 하지만 만약 스타트업과 기성 기업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으면 환상적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 인력과 외부 인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내부 인력이 너무 많으면 기업가적 역량을 활용하기 힘들어진다. 반대로 너무 적으면 스타트업으로부터 학습하기 어려워진다. 폴크스바겐의 중고차 마켓플레이스 헤이카Heycar 출시를 이끈 앤서니 밴드먼Anthony Bandmann은 회사에 디지털 개발자가 필요해서 외부에서 인력을 채용해야 했지만 학습 과정을 촉진하는 데는 내부 인력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폴크스바겐 출신이 CFO를 맡고 있다. 헤이카에서 배우고 있는 점이 많기 때문에 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성공하도록 하는 법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조, 리더, 팀 모두 중요하지만 진정한 미실현 수요를 찾아내고 신속하고 반복적으로 프로토타입 솔루션을 제작해 지속가능한 서비스나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가적 역량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20년 전만 해도 이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에릭 리스Eric Ries가 쓴 (인사이트, 2012), 팀 브라운Tim Brown이 쓴 <디자인에 집중하라>(김영사, 2019), 네이선 퍼, 제프 다이어Jeff Dyer 가 공저한 <이노베이터 메소드>(세종, 2015) 등의 책에 모범 사례가 기록돼 있다. 기업은 기업가적 역량이 마치 마케팅이나 재무와 같이 실체적인 업무 역량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역량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밴드먼은 헤이카 설립 초기 전통적 기업의 방식으로 접근했던 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업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점점 권수가 하나씩 늘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50권에 걸쳐 중고차 사이트의 48번 위치에서는 무엇을 할지 등을 나열하고 있을 것 같았다. 프로젝트 기간은 2~3년 정도로 보고 있었다. 사업이 설립될 즈음이면 세상이 3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밴드먼은 폴크스바겐이 ‘스타트업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기업가적 발견은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설문조사나 심층연구를 진행하거나 타 업체의 시장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가의 방식이 아니다. 그 대신 의식했든 아니든 민족학적 기법을 적용해 최소 12명에서 16명 (종종 훨씬 더 많은) 정도의 소비자들을 일대일로 수주간 인터뷰하고 소비자의 경험을 깊게 관찰한다.
이처럼 깊이 있는 질적 조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헤이카 자문을 맡은 BCG X의 파트너 마티아스 엔튼만Mathias Entenmann은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에는 중고차 시장이 꽤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폴크스바겐이 진입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장이 망가져 있었고 파괴적 혁신의 기회가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고차 딜러 및 소비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면서 폴크스바겐은 딜러와 소비자들이 허위 매물이 빈번한 온라인 자동차 시장에 얼마나 좌절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이 같은 발견 단계에는 보통 10주 정도 소요되고, 이 동안 시장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수백 가지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그후 다음의 4가지 간단한 질문을 순서대로 던지면서 아이디어를 테스트한다. (1)중요한 문제인가?(매력성) (2)우리의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실행 가능성) (3)경쟁자의 아이디어를 이길 수 있는가?(생존 가능성) (4)아이디어를 확장할 수 있는가?(확장성)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매력성에 달려있기 때문에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족하기 가장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를 통해 얼마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또는 고객들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초기 단계의 질적 조사를 통해 이에 대한 감을 잡게 된다.
큰 문제를 몇 가지 찾아낸 뒤에는 실행 가능성과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신속하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고 시험한다. 일례로 UPS 산하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팀은 중소기업 업주들이 주말마다 창고까지 운전해서 가야 하고 누적된 주문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UPS가 아마존 물류fulfillment 부문과 같이 창고부터 물류까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UPS의 글로벌 소매 및 전자 상거래 담당 부사장 닉 배스퍼드Nick Basford는 온라인으로 목도리를 판매하는 작은 업체 한 곳을 찾아내 창고를 임대하고 물류 플랫폼을 시뮬레이션 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최소 기능 제품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고, UPS의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웨어투고Ware2Go는 지난 4년 동안 수익성 있게 성장해 왔다.
만일 ‘우리 회사는 이미 사내 혁신 연구소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세스에는 속도, 규모 및 엄밀함이 필수다. 사내 연구소가 소비자 조사 및 브레인스토밍에 뛰어나고 기초적인 프로토타이핑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BCG X는 자문 프로젝트마다 기업 소속 리더,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팀, 소비자들과 엔지니어링, 디자인, 코딩 분야 간부들이 48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집중적인 프로토타이핑 및 테스트를 진행하는 ‘아레나’라는 프로세스를 운영한다. 이 프로세스를 통해 빠른 속도로 고객 기반 데이터를 생산해 스타트업 팀이 어떤 아이디어에 투자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확장성 달성
폴 허스트에 따르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의 전부는 아니다. 그건 매우 좁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장 진출 전략, 오퍼레이션, 세일즈 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사업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첫날부터 고려하고 구축하고 있다.” 또한 확장성은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정의하고 핵심 사업 영역과 통합하는 것에 달려있기도 하다.
확장성의 핵심에는 비즈니스 모델의 단위경제unit economics를 발견하는 것이다. 단위경제는 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과 같이 익숙한 기업 지표는 아니지만 드롭박스, 아마존, 잘란도Zalando 등 유명 스타트업 성공의 밑바탕이다. 이런 기업들이 출범했을 때, 고객확보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이 고객생애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보다 낮을 경우(3분의 1 이하인 것이 이상적이다),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 데 1달러를 쓰면 머지않아 3달러로 바뀐다는 뜻이다. BCG X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하이브리드 스타트업 마케팅 전문가인 로버트 드로Robert Derow는 “적절한 속성당 단위경제를 발견하는 것, 즉 마케팅 채널이나 코호트 단위 아니면 연령, 성별, 키워드, 지역 등의 속성을 바탕으로 고객확보비용이나 고객생애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AIA는 스낵박스의 시장 진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을 때 구글, 페이스북, 링크트인 등의 채널에서 7일간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스낵박스를 설명할 수 있는 5가지 방법을 시험해봤다. 2000명의 잠재고객에게 광고가 노출됐고, 클릭률은 금융 및 보험 광고 평균인 0.56%에 비해 52%나 더 높았다. 매우 긍정적인 수치였다. AIA는 시험 결과를 활용해 더 깊게 파고 들었고, 예를 들면 ‘저렴한 소액보험’이 ‘소액보험 마켓 플레이스’를 비롯한 다른 표현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임시 랜딩 페이지를 사용해 어떤 사람이 관심을 보였는지, 비디오나 텍스트 등 어떤 미디어에 반응했는지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마케팅 채널, 비용 및 수익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장 가능한 시장 진출 전략을 세웠고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어떤 지표가 효과적인지는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이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에스크로 절차에 도전하고자 하는 퍼스트 아메리칸의 자회사 엔드포인트는 직원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능력, 즉 ‘바이오닉 인재’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집중한다. 에어버스의 UP42는 확보한 신규 파트너 사의 수,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파트너 사 데이터 및 애널리틱스 상품의 다양성, 고객 활용도의 적극성과 매출을 중시한다.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부 조직 개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에어버스의 일부 조직적 변경도 필요할 수 있다.
에어버스의 상무 에버트 듀독Evert Dudok, 전무 프랑수아 롬바르Franois Lombard, UP42 CEO인 션 와일드Sean Wiid는 에어버스가 그동안 활용하지 못했던 풍부한 데이터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UP42 플랫폼 개발을 주도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애널리틱스, 애플리케이션의 3개 층으로 구성된 플랫폼을 구축하고 에어버스 데이터를 파트너사 및 심지어 경쟁사의 데이터와 재결합해야 했다. 경쟁사에게 UP42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별도의 법인을 세우고 주요 파트너를 유치하기 위해 공정하게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들이 UP42가 성공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세운 덕분에 UP42는 지금까지 55개 파트너 사를 확보했으며 매년 두세 배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존 기업 체계와 벤처의 호환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의 기존 절차나 규정에 따라 벤처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기업가적 역량을 키우고 속도를 높인다는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의 핵심이 약해지고 결국 벤처를 완전히 망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업 시스템과 벤처를 통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벤처를 구축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인 것이다. 지식을 교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업 영역에서 연결된다.
기술 발전으로 그동안 익숙했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기성 기업들은 테크 기업이 자신들의 사업 영역에 대해 파악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테크 기업이 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하이브리드 스타트업을 적절하게 구상하고 관리한다면 기존 자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내고, 혁신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스타트업에서 얻은 통찰과 역량을 핵심사업 영역으로 이전하고, 비즈니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네이선 퍼(Nathan Fur)는 인시아드 부교수이자 <이노베이터 메소드> 등 베스트셀러 5권을 저술했다. 케이트 오키프(Kate O’Keeffe)는 보스턴컨설팅그룹의 기술 구축 및 디자인 부문인 BCG X 시드니 오피스파트너이자 디자인 디렉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