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9월 호에 실린 트루포인트 관리 이사 너새니얼 푸트(Nathaniel Foote), 트루포인트 사장 러셀 아이젠스탯(Russell Eisenstat), 샬머스기술대 부교수 토비아스 프레드버그(Tobias Fredberg)의 글 ‘The Higher-ambition Leader’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09년, 씨티은행(Citibank)의 주가가 1달러 이하로 폭락하고 HSBC의 이익이 2007년의 3분의 1 이하로 급락했다. 하지만 같은 해 스탠다드차타드은행(Standard Chartered Bank)은 정부로부터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받지 않고도 7년 연속 매출 및 이익 성장을 기록했다. 금융계 전체가 정당성의 위기(crisis of legitimacy)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같은 기간 동안 고객과 규제 기관 사이에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평판은 한층 좋아졌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전체 대출 규모는 13%, 주택 담보 대출은 21%, 중소기업 대출은 14% 증가했다.
그렇다면 모든 금융계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어떻게 그토록 탄탄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불황이 닥치기 전에 차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으며 은행 조직원 모두가 이 모델을 충실히 실행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CEO 피터 샌즈(Peter Sands)는 “우리는 매우 명확한 전략을 갖고 있었으며 그 전략을 고집했다. 모두가 그 전략을 이해했으며 우리는 그 전략에 매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흔들림 없이 금융위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직원들은 어려움을 겪는 환경에서 샌즈의 말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샌즈는 “직원들은 특정 사업부나 특정 역할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직원들은 은행 자체와 고객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반응은 금융업계 내에서 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팀워크 붕괴, 내부 갈등 등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샌즈는 “스트레스가 심각하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 아래에서는 대부분의 조직이 바로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지리적 위치와 비즈니스 모델, 문화 등으로 경쟁우위를 갖추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들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리더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샌즈는 기업운영에 관한 우수한 접근방법을 발전시켜 온 CEO 중 한 명이다. 필자들은 이런 CEO들을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진 리더(higher-ambition leaders)”라 부른다. 이런 리더들은 대부분의 리더들과 달리 단순히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데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장기적인 경제적 가치 창출’ ‘좀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주도적인 기여’ ‘조직 내 탄탄한 사회적 자본 구축’ 등 3가지 측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이와 같은 3개의 영역 중 하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CEO는 많다. 하지만 일반적인 CEO들과 달리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진 리더들은 조직의 인적 잠재력 및 비즈니스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해 3개 영역 모두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진 CEO들은 위압적인 도전과 마주한 상황에서 회사를 놀라운 성공의 길로 인도한다. 덕 코넌트(Doug Conant)는 모든 사람이 사양사업이라고 생각했던 농축 수프 비즈니스에 주력했고 그 결과 3년 연속 주가 폭락을 경험하고 있던 캠벨 수프(Campbell Soup)를 회생켰다. 라이프 요한슨(Leif Johansson)은 볼보(Volvo)를 대표하던 승용차사업부를 매각하고 자사를 세계 최고의 상용차 제조회사로 변모시켰고 그 결과 합병 실패 후 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던 볼보의 주가가 3배로 뛰어올랐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피터 샌즈와 샌즈의 전임자 머빈 데이비스(Mervyn Davies)는 자사 직원들조차 평범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던 조직을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친 경제위기를 무리 없이 이겨낸 존경받는 글로벌 선도업체로 변모시켰다.
필자들은 지난 4년 동안 앞서 언급한 CEO들은 물론 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세계 각지의 CEO 33인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필자들은 이런 CEO들이 21세기에 조직을 경영하기 위한 좀 더 나은 방법을 발견했다고, 또 더 많은 경영자들이 이들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리더가 되기 위해 영웅적 행위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대신 확신을 바탕으로 하는 투지와 전략을 세우고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을 구축하는 데 대한 포괄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다음은 더 원대한 포부를 지닌 리더들의 접근방법이다.
● 조직이 물려받은 유산과 문화적, 조직적, 사회적 자산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강력한 전략적 비전을 구축한다.
●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비전 달성을 위해 노력할 의지와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을 공동의 목표와 높은 수준의 감정적 유대감, 강한 신뢰와 존경을 갖고 있는 공동체로 꾸준히 육성한다.
● 이런 리더들은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오랜 기간에 걸쳐 비전을 추구해 나가도록 하는 기질적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런 리더들은 직원들의 신뢰를 더 높이고 직원들을 더 헌신하게 해서 뛰어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력은 넘치지만 마찰은 적은 조직을 구축한다. 더 원대한 포부를 지닌 리더들은 뛰어난 재무 성과를 통해 얻은 자원을 활용해 조직 내에서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며 조직 외부에서 좀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또한 이런 노력은 추가적인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며 조직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더 원대한 포부를 지닌 리더들이 어떻게 이 모두를 달성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전략적 정체성 구축 방법 일반적인 리더의 패턴 - 전략은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 뛰어난 전략은 지적인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 내부 전문가와 외부 컨설턴트가 전략을 개발한다. - 전략과 조직은 별개의 주제 영역이다.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진 리더의 접근방법 - 전략은 뛰어난 경제적 성과와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 활기찬 조직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 전략 개발은 이성적이고 직관적인 과정이며 조직이 갖고 있는 우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 총괄 관리자가 전략 책임자지만 조직을 폭넓게 전략 관련 업무에 참여시켜야 한다. - 조직 설계는 경쟁 우위를 만들어낸다. - 기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역량을 구축하고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
전략적 정체성 구축
관리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더 원대한 포부를 가진 CEO는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리더들은 회사의 전략을 조직원들의 감성과 열정에 연결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조직 구성원들이 회사가 갖고 있는 특이한 특징, 역량, 조직의 강점 등을 새롭게,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략 그 이상을 만들어낸다. 필자들은 이것이 바로 기업의 근본적인 ‘전략적 정체성(strategic identity)’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3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히어 포 굿(Here for good)’이라는 과감한 브랜드 약속을 내놓았다. 이 브랜드 약속이 갖고 있는 이중적 의미(‘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있다’는 의미와 ‘영원히 이 곳에 있겠다’는 의미)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바람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히어 포 굿’이라는 대중과의 약속을 내놓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금융위기였다. 하지만 이 브랜드 약속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거의 십 년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략적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2001년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계속해서(혹은 조금이라도 오래) 은행 업계에 남을 수 있을지 전혀 확실치 않았다. 중간급 국제 은행이었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항상 다른 은행들이 인수 기회를 노리는 대상이었으며 자사 직원들마저도 ‘평범하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특색이 없었다. 여러 차례의 인수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긴 했지만 1997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이익은 끝없이 추락했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오갔다. 샌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조직이 표류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 당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갖고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2001년 말,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이사회는 CEO를 해임하고 머빈 데이비스를 CEO 자리에 앉혔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CEO가 된 데이비스는 곧 샌즈를 CFO로 채용했다.
그 당시 이 은행의 입지는 위태로웠다. 샌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은행에 먹힐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데이비스와 샌즈는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을 초청해 자사의 고위급 관리자 300여 명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투자자들은 불만이 매우 많았다. 주가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자본 구조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샌즈는 “우리 은행에서 돈이 줄줄 새어나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신속하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약점을 해결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자사의 강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의미 있는 목적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데이비스와 샌즈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매우 전통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영업 중인 모든 국가의 모든 지사에 대해 포괄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검토한 후 실적이 저조한 자산과 사업을 매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은행 최고위급 관리자 100명에 대해 성과 검토를 실시해 30명을 해고했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합리화 과정을 통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기존에 진출한 역사와 현지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 강력한 관계(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지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를 갖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 다시금 집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했다. 이들은 매우 현지화돼 있고 개인화돼 있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자선 활동에 대해 유사한 방식으로 검토한 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영업 중인 모든 국가에 적용할 대규모 계획을 수립했다. 2003년, 데이비스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150주년 기념일에 전 세계의 예방 가능한 시력 상실과 맞서 싸우기 위한 자금 조성을 목표로 한 사내 캠페인인 ‘백문이 불여일견(Seeing Is Believing)’을 공개했다. 샌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는 2만8000명의 직원이 있다. 따라서 2만8000명의 시력을 지켜낼 만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캠페인을 진행한 첫해에 5만6000명에게 시력을 되찾아줄 수 있을 정도의 기금을 조성했다. 목표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샌즈는 “우리는 상황이 매우 흥미롭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3년간 100만 명에게 시력을 찾아주기를 목표로 삼았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100만 명에게 시력을 찾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00만 명을 목표로 삼아보자’고 정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백문이 불여일견’ 프로그램을 통해 2010년 말까지 자사가 진출해 있는 지역에서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줬고 예방 치료를 통해 그 외 750만 명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
전 직원은 ‘백문이 불여일견’ 프로그램을 계기로 스탠다드차타드라는 조직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한층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다양성이 매우 두드러진 스탠다드차타드라는 공동체가 하나로 통합됐다. 아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샌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라리온(Sierra Leone) 사람들은 자선 걷기 대회를 후원했다. 물론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이 그렇게 많은 돈이 모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에라리온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시력을 위해 걷기 대회를 후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과 영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백문이 불여일견’ 프로그램의 성공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비즈니스 잠재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샌즈는 “우리는 선의를 갖고 규모가 작은 프로그램을 여러 개 진행하던 방식에서부터 출발해 진정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전 직원들은 중요한 곳에 자원을 모으고, 집중하고, 포부를 가지게 됐으며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비즈니스에서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만으로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매수를 꿈꾸는 기업들의 접근을 저지하기에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강점을 활용해 자사만의 독특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홍콩에서 은행업계 위기로 인해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데이비스와 샌즈는 장기적이고 매우 야심에 찬 비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은행 임원들과 협력했으며 힘이 느껴지는 104개의 단어로 이뤄진 전략 의지를 발표했다.
‘앞서가는 기업(Leading the Way)’이라는 이름의 문서에 따르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비전은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고객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현지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과 글로벌 영업망을 결합해 ‘세계 최고의 국제 은행’이 되는 것이다. 물론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비전은 참신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이런 비전은 글로벌 은행업계의 궁극적 목표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경쟁업체들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SBC는 각국에서 능력 있는 CEO들을 보유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씨티그룹(Citigroup)은 그 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둘 중 하나를 얻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각국의 CEO, 비즈니스 책임자, 글로벌 기능 부문 등을 모두 한눈에 보여주는 복잡한 3D 매트릭스를 통해 경영을 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각국의 CEO들에게는 현지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하고 현지 자본시장에서 직접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대규모 국제 은행들은 보통 이런 거래를 할 때 현지에서 적용되는 규제의 모호성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정도(正道)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믿을 수 있을 만한 내부자(trusted insider)’가 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영업 중인 국가의 현지 정부에 자사가 건설적인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했다. 따라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각국 CEO들에게 현지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규제기관을 파트너로 여길 것을 당부했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각국 CEO의 역할을 강화하고 현지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동시에 고객과의 글로벌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도매 은행 사업부는 관련 상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했으며 인센티브 제도를 수정해 현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고객과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를 현지 책임자의 공로로 인정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거래를 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침 덕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현지 관리자들은 지역주의적 견해를 덜 갖게 됐고 은행의 글로벌 영업망을 적극 활용하게 됐다. 샌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현지의 대형 은행들은 현지에 맞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은 국제 업무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매트릭스 구조가 원활하게 기능하려면 인센티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직원들이 전통적인 명령 체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직접 일하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 때 조직 구조 상부에서 그 결정이 계속해서 반대에 부딪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조직 구성원들은 다양한 관점과 업무 방식, 각국의 문화를 인정해야 하며 조직 내에서 이런 차이를 초월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이런 관점을 실현하기 위해 직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이들이 택한 방법 중 하나는 단순히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어쩌면 흔한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샌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직원들이 기능적 사일로(silo)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가령, 전문 은행가는 전혀 아니었지만 조직의 학습 그룹을 운영해 왔던 사람을 중국의 한 CEO로 앉힌 적이 있다. 사람들을 각기 다른 차원에서 일을 하도록 만들면 그만큼 사일로 현상도 줄어든다.”
데이비스와 샌즈는 인사 평가를 실시할 때 협업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교육과 지원 과정을 거친 후에도 효과적으로 협력을 하지 못하는 관리자는 언제든 해고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스와 샌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동호회 생성부터 인수 후 통합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여러 하위 조직 문화를 기리고 서로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과 대만에서 다른 은행을 인수했을 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환영 주간(welcome week)’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피인수 조직의 대표들을 세계 각지의 지점으로 파견했다. 60명의 대만인들은 2명씩 짝을 지어 총 30개 국의 지점을 방문했다. 파견을 나간 대만 대표들은 해외 조직 방문을 통해 대만 현지의 비즈니스 현황 및 대만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들이 방문한 각 조직 및 국가에 대한 정보를 대만의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 관리자, 비즈니스 관리자, 규제 기관, 현지 고객, 국제 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조심스레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매트릭스 조직을 구축한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스탠다드차타드가 HSBC와 씨티가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목표, 즉 내부적으로도 모든 현지 시장에서 탄탄한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이뤄내기 시작한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고객 중심 전략을 몸소 실천하면서 ‘히어 포 굿’을 전략적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점이 한층 명확해졌다. 2003년에 아시아에서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확산된 후 대부분의 은행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호텔 및 여행업계의 고객사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다른 은행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추가 대출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적극적으로 고객사에 질문을 던졌다.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경영진은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대출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유동성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금융기관 중 하나였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여느 은행들과는 달리 가치 있는 수많은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기존 고객에게 모든 자본과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또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채광, 임업, 선박 해체 등 위험한 일이 많은 업계에 속하는 고객사와 거래할 때 근로자 안전 규정 및 환경보호 규정을 계약 내용에 포함시켜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는 역할을 강화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단순히 광고 문구로 끝날 수도 있었던 슬로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좀 더 포괄적이고 강력한 사명을 위해 꾸준히, 지속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2010년이 되자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자사가 정말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확실히 주장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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