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한대화의 인생을 다룬 KBSN TV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그는 해태 타이거스 팀의 스타플레이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태의 밥이었던 OB 베어스 팀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습니다. 해태는 미웠지만, 한대화는 멋있었습니다. 그는 결정적일 때 꼭 타점을 올리는 해결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됐습니다. 글쎄, 한대화가 원래는 OB 선수였다는 것입니다. 대학 유망주였던 그는 1983년 큰 기대를 받으며 이전 해 우승팀 OB에 입단했는데, 허리통증과 간염에 시달리며 3년간 쭉 형편없는 성적을 냈습니다. 또 스파르타식 선수 관리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과 불화를 겪었습니다. 결국 OB는 그를 해태의 후보선수 두 명과 맞트레이드했습니다.
그렇게 광주에 새 둥지를 틀자마자 한대화의 능력이 대폭발했습니다. 이후 8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여섯 번 우승했고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상을 여섯 번 탔습니다. 해태와 한대화는 최고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반대로, OB는 저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바닥권을 헤맸습니다. 한대화를 주고 데려온 해태 출신 선수들은 1~2년 만에 선수생활을 접었습니다. OB의 트레이드 대참사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OB는 왜 한대화의 진짜 가치를 몰라봤을까요. 또 해태는 대체 뭘 믿고 OB의 골칫덩이이자, 부실자산이자, 계륵이었던 한대화를 인수했을까요.
이번 호에 실린 토론토대 로저 마틴 교수와 PE펀드 노앤파트너스 민선홍 상무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봤습니다. M&A와 기업가치평가(valuatio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마틴 교수의 시각으로 보죠. OB는 이 선수가 3년간 보여준 형편없는 기록, 즉 과거 성과를 기준으로 트레이드 가격을 설정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민선홍 상무의 시각으로 보자면 OB가 잘못했다기보다는 해태가 잘한 것입니다. OB에게는 한대화를 내보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조직 내부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기업이 바보는 아니니까요. 해태 구단은 OB가 내놓은 한대화를 데려와서는 마치 PE펀드가 부실기업을 살려내듯이 턴어라운드 시켰습니다. 해태 기존 멤버들과 한대화의 궁합도 잘 맞았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이다(The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경영학에서는 가치평가 방식에 정답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든 사업이든, 그 가치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는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직장인 개인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내 능력을 모두 끌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한대화처럼 털고 일어나 새 기회를 모색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게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이번 호 인터뷰에서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가 말합니다. “설레지 않는 것과는 작별을 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