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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사과문’과 다르다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부터 바꿔라

매거진
2015. 9월호

사과는‘사과문’과 다르다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부터 바꿔라

 

사과apology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이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갈등 조정언어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하는 개인 간의 사과interpersonal apology와 비교적 최근에 주목 받고 있는 대중을 향한 공개 사과public apology.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차원의 사과 혹은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이 정치 분야에서 일부 논의됐지만, 기업 경영분야에서 공개 사과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최근의 중요한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의 실수나 잘못을 숨길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말땅콩회항사건도 소셜미디어의 일종인블라인드앱에서 시작됐다. 공개 사과는 보통 사과의 주체가 기업이나 책임 당사자자라는 점에서, 또 대상이 피해자라기보다는 대중이라는 점에서 개인 간의 사과와 다르다. 이번에 HBR에서 슈바이처, 브룩스, 갤린스키 교수는 <효과적인 사과를 위한 단계별 전략>에서 기업의 공개사과에 대한 경영학적 논의를 펼쳤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경영자들이 효과적인 사과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을 적어본다. 첫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과할 수 있을까?” 이전에 우리가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어떻게 하면 사과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믿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기업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마텔의 장난감이 아이들과의 대화를 녹음해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생활 침해 논란,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페이스북의 감정조작 실험에 관해 경영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 한국 기업처럼 수직적 의사결정 문화가 강한 환경에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사전에 예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이전에어떻게 하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은 물론 다양한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해 잠재적인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 사건이나 문제들은 조직 내 누군가가 사전에 감지하거나 의문을 품는 경우가 꽤 많다. 만약 이들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된다면 굳이 오너나 대표가 망신 당하면서 공개적으로 사과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오너가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문제점을 포착한 소수의 개인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임원이나 팀장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때 돌아올 개인적 득과 실을 계산하게 된다. 수직적인 문화에서 오너 혹은 다수의 결정에 반하는 소수 의견은 묵살되거나 공격받기 십상이다.

 

간혹 소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추진하려던 일을 포기했다 치자. 이 경우 만약 일을 추진했을 때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수 의견을 말한 사람은 조직 내에서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최근 아흔이 넘은 창업자와 두 형제 사이의 진흙탕 싸움으로 문제가 된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이 기업의 지배 구조가 언젠가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임원이 없었을까? 조직을 위하는 마음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하더라도 이 직원은 또 다른충성그룹에 의해 조직을 떠나게 됐을 확률이 크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오너가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형제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개선했다 치자. 그렇게 했다면 오늘의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너 입장에서는 문제를 개선하지 않았을 때 이렇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상황이 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과거처럼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어떤 경우라도 조직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별다른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문제점을 인식하더라도 소수 의견일 경우에는 조용히 있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문제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기 관리에 뛰어드는 것이 조직 내에서 인정 받는 길이다.

 

어떤 경우라도 조직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별다른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차라리 문제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기 관리에 뛰어드는 것이 조직 내에서

인정 받는 길이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하면 오너나 최고 경영자 입장에서 사과할 상황을 줄일 수 있을까? 한국처럼 수직적 문화 체계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레드팀Red Team의 운영이다. 이 제도는 HBR 2014 12월에 소개된 헤이스티와 선스타인의 <바보 같은 집단을 현명하게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조용병 행장은 임원회의에 레드팀 제도를 도입했다. 임원회의에 참석하는 사람 중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레드팀역할을 하게 되는데, 안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논리를 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레드팀은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가What can go wrong?”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제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나 역시 레드팀을 국내 대기업에 제안해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임원이 돌아가면서 레드팀을 맡는 것보다는 회의 안건에 관련된 전문가 혹은 언론사나 경쟁사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임원뿐 아니라 젊은 직원들을 섞어서 운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CEO와 거리가 먼 젊은 직원들이 오히려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질병관리센터CDC에서 10여 년간 운영해오고 있는 B팀이다. 이는 레드팀과는 다르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과거의 지식 체계나 경험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사스SARS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질병관리센터에서는 감염병과 같은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조직 내외부의 전문가로 구성된 B팀을 운영한다. 위기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거나 뜻밖의 변수를 생각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B팀은 위기 관리팀으로부터 매일 시시각각 모든 정보를 공유 받으면서, 위기관리팀과는 별도로 새로운 시각에서 해법이나 의견을 제시한다. 반대의 입장에 서는 레드팀과는 달리 B팀은 최고 의사결정팀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는 창의적 역할을 하게 된다. 레드팀이나 B팀의 운영은 공개 사과까지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도록 만들어준다.

 

둘째, <효과적인 사과를 위한 단계별 전략>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법적인 렌즈legal lens’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문제다. 이 부분도 조직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관련이 있다. 보통 위기상황에서 법무팀의 의견은 오너에게 타 부서보다 훨씬 우월한 힘을 행사한다. 하지만 공개 사과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사과문을 어떻게 작성하고, 누가 발표할 것인지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자문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개 사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부정적 사건에 휘말린 자신들의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공개 사과를 한다. 공개 사과란 결국 대중을 향한 평판 사과reputational apology. 공개 사과는 법정에서 판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여론을 향해 하는 것이다. 평판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에 법률자문은 어느 정도 해야 할까? 최소한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의견을 제시하고, 전반적인 문구나 전달 방법은 여론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법률 자문과 여론전문가의 생각은 반대에 가깝다. 법정에서잘못의 인정은 피고에게 불리할 수 있으며, 상대방(법정)이 밝힐 때까지 굳이 스스로 잘못을 밝힐 필요가 없다. 소위무죄추정의 원칙때문이다. 하지만 여론 관리의 측면에서는 상대방(언론이나 검찰 등)이 기업의 잘못을 공격하기 전에 혹은 공격한 직후에 제대로 공개 사과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이 효과적인 사과는 주장 증명이라기보다 대중의 감정이나 긴장완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 대목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건 공개적인 자리이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결국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사과로 여론이 악화되면 법정에서도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받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된다. 땅콩회항 사태는 이런 역학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 가능성과 관련,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된반올림사태를 대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담당팀을 법무팀에서 커뮤니케이션팀으로 바꾼 바가 있다. 이는 시각과 태도에서 대단한 변화인데 반올림과의 소송이나 법적 논리의 다툼이 아닌 긴장완화와 여론과의 대화로 전환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정위의 중재안에 대해 최종 합의가 되지는 않았지만, 커뮤니케이션팀이 담당 채널이 된 이후로 대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원문에서 저자들은 미국 유통업체 타깃의 사례를 잠시 언급했다. 해킹 사건으로 타깃이 엄청난 위기에 휩싸였을 때다. 당시 CEO였던 스타인하펠은 첫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 초안이마치 변호사가 쓴 것처럼 타깃의 입장만을 변호했다고 불만을 표시해 다시 수정하게 했는데, 이는 그가 법정과 여론의 차이와 균형을 알고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영진이 많은데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기업이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 위기가 발생하고, 공개 사과를 고려해야 하는 시점은 법이 아닌 공중의 기대치public expectation와 관련한 게임이 된다(원문에서 저자들은 이를심리적 계약으로 표현한다). 법적 보호legal protection는 전체적인 보호total protection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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