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틴토 CEO, 초순환 hypercyclical 산업에 적응하다
The Idea
샘 월시는 거대 광산업체 리오틴토의 씀씀이를 단속하기 위해 소년 시절 배운 교훈들을 떠올렸다. |
내가 영국-호주의 철광석 생산업체 리오틴토Rio Tinto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된 데에는 분명 열대의 기운이 있다. 2013년 1월, 나는 싱가포르에서 아내와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휴가 중 당시 리오틴토의 회장인 얀 두 플레시Jan Du Plessis로부터 긴급 이사회 참석을 위해 급히 런던으로 와달라는 이메일이 왔다. 내가 집을 떠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는 이메일에서 모든 걸 중지하고 “있는 그대로 오라”고 했다.
나는 1991년 리오틴토에 합류했고, 리오틴토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품그룹인 철광석사업을 이끄는 자리에 올랐다. 2009년부터는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140년이나 된 이 회사의 이사회 문화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진지한 자리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나타나서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내 여행가방 안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한밤중에 문을 연 양복점을 찾았고, 결국 정장을 맞춰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나는 우리 부서를 강한 규율과 책임으로 이끌어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아달라고 이사회가 제안했을 때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나는 63세였고, 이는 회사가 찾고 있던 CEO의 조건보다 다소 많은 나이였다.
게다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산회사이자 시가총액이 500억 달러에 이르는 리오틴토는 최고경영자를 자주 교체하는 회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회 멤버들은 회사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2000년대에 리오틴토는 중국의 급성장으로 촉발된 역사상 가장 큰 원자재 호황 중 하나를 누렸다. 거의 모든 대형 광산업체들이 성장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 우를 범했다. 특히 리오틴토는 예전에는 자본분산(투자)을 현명하게 잘하는 것으로 소문난 기업이었기에 당시의 무모함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원자재 호황기에 두 차례의 기업인수를 거치면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평가절하를 겪어야 했고, 2012년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우리는 백지수표를 쓰듯이 지출을 했다. 정말 솔직히, 우리는 분수에 넘치게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가지 계획
거시적 관점에서 나는 흥미로운 시기에 키를 잡았다. 앞으로 수십 년간,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할 것이다. 그들은 스마트폰, 자동차, 건물, 그리고 다른 편의도구들을 만들기 위해 광물과 금속들에 의존할 것이다. 광산산업 없이 국제적인 발전을 꾀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산업의 경쟁이 미래에는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격한 수요 이동과 가격 변동은 더욱 잦아질 것이다. 산업은 초(超)순환적hypercyclical이 될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러한 현상을 “뉴 노멀”이라고 부른다. 모두 이 현상에 대비해야만 한다.
이처럼 요동치는 환경에서 리오틴토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나는 재무제표의 규율을 다시 세워야 했다. 지속 성장이 가능한 균형 잡힌 길로 회사를 되돌려놓아야 했다. 재정 규율과 책임 있는 리스크 관리는 어떤 시장환경에서도 안전한 경영의 원칙이다. 특히 가격 등락이 심한 초순환 시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고재무책임자 크리스 린치Christ Lynch와 나는 세 가지 전략에 집중하기로 했다. 첫째, 오직 최고의 프로젝트만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 결정을 엄격하게 했다. 둘째, 리오틴토 정도의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회사로는 드물게 현금 위주 관리체제로 운영하며, 그 어떤 가치보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 했다. 셋째, 지출 감소, 사업 폐쇄, 인력 적정화를 통해 조직에 효율성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산업의 우수사례를 가져오고 신기술로 최상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혁신에 투자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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