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직전인 2017년 12월 초, 온라인 여행사 부킹닷컴(booking.com)의 디자인 디렉터는 회사 홈페이지에 완전히 새로운 레이아웃을 시범 적용해 보자는 급진적인 실험을 제안했다. 기존의 부킹닷컴 홈페이지에서는 호텔, 렌털, 여행상품 등 수많은 옵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디자인 디렉터가 새롭게 제안한 홈페이지에는 어디로, 언제, 몇 명이 여행을 가는지를 묻는 작은 창이 있고, ‘숙박’ ‘항공’ ‘렌터카’ 등 간단한 세 가지 옵션만이 제시됐다. 부킹닷컴이 수년간 시간을 들여 최적화해 온 사진과 문구와 버튼과 메시지 등 다른 모든 내용과 디자인 요소는 삭제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부킹닷컴의 CEO였던 길리언 탄스는 디자인 디렉터의 이런 제안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부킹닷컴의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홈페이지 변경으로 혼란을 겪게 될 거라고 우려했다. 당시 핵심 실험팀의 루카스 베르메르 팀장은 테스트 결과가 ‘폭망’하리라는 데 샴페인 한 병을 걸었다. 홈페이지 방문자 대비 예약자 수 비율, 고객전환율 같은 주요 성과지표가 폭락할 거라고 그는 전망했다.
이렇게 비관론이 대세였는데, 경영진은 왜 이 실험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만약 반대한다면, 회사의 어느 누구라도 경영진의 승인 없이 무엇이든 테스트해볼 수 있다는 부킹닷컴의 핵심 원칙 중 하나를 위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