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졸업한 이후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특정한 직업을 가진 적이 없다. 레지던트 시절에 나는 진로를 바꿨다. 나는 일터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일이 삶을 더 의미 있거나 더 비참하게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임상의학에서 경영학계로 넘어가기까지 오랜 과도기를 거쳤다. 수년간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너무 다른 두 분야 사이의 다리를 건넜다. 그 기간 동안 컨설팅을 하고, 강의를 하고, 직장 세계에 대한 글을 썼다.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자유로웠고, 자부심을 느꼈고,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어떤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꿈 속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노트북 컴퓨터, 서류, 휴대전화, 돈이 든 가방이 사라진 것을 항상 뒤늦게 알아챘다. 나는 당황했고, 겁을 먹었다.
임차한 방에서 혼자 자던 어느 날 밤 나는 꿈에서 깼다.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다음날 오피스에 출근하지 않았다 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피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일을 위한 집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임시로 하던 일이 직업이 됐다. 인시아드에서 겸임교수 자격으로 강의를 하나 맡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한 학기는 14년이 됐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시아드에 임용된 후 퐁텐블로 숲과 길을 하나 사이에 둔 곳에 나만의 오피스를 갖게 됐다. 나는 그곳을 내 ‘박스’라고 부른다. 문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방에는 내 업무생활의 잔해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 정리정돈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한 번도 실천한 적은 없다. 물건들은 그 방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이 중요하다.
박스가 생긴 이후로 내가 이 일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가방을 잃어버리는 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그렇게 잠을 설치는 밤이 낫다. 오피스에서 겪는 불안은 대부분 성과와 관련된 불안, 즉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어떤 자리에 맞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가끔은 이런 불안이 실존적인 불안으로 발전해,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해지거나 실직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지게 된다. 그런데 오피스가 아예 없으면 모든 성과가 실존적 의미를 갖게 된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 일은 당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일과 자신을 동시에 잃는 위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심화된다. 세계 전역의 오피스가 줄줄이 문을 닫고 직장생활이 전보다 훨씬 더 위태로워지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당신도 이런 경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