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자녀 양육과 커리어 관리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나 지역사회의 지원이 거의 없다. 하지만 관련 조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육아 관련 서적, 시어머니, 장모님, 직장 동료, 쓴소리 잘하는 동년배 지인, 시장에서 만나는 낯 모르는 어른 등 많은 사람이 당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틈만 나면 알려주고 싶어한다. ‘모유로 키우는 게 최고지’ ‘아이가 있는 사람이 파트너 트랙partner track을 밟는 건 불가능해’ ‘TV나 컴퓨터는 못 보게 해야지’ ‘근무시간을 줄여 달라고 하는 건 커리어를 망치는 길이야’ ‘애 양말 좀 신겨!’
미국 부모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일하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지금의 대졸자 부모가 여기에 쏟는 시간은 1965년의 부모들에 비해 두 배나 더 길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다. 아이가 부모의 직장 동료이고, 부모가 아이의 교사이자 놀이 친구이며 풀타임 양육자인 지금도 어이없지만 그렇다. 우리가 늘 피로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어쩌다 장시간 근무를 하며 아이들의 학업, 운동, 기타 활동을 챙기면서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아이의 세례식에 참석한 베이든-포웰 경 내외와 아이를 안고 있는 유모(사진 출처: PA Images via Getty Images)
과거: ‘대행 부모’의 시대
영어 단어 ‘페어런트parent’가 ‘부모역할(양육)을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의 부모만 전적으로 양육을 책임지게 된 시기는 전체 역사에서 그리 길지 않다. 인류가 생존이라는 과업에 집중해야 했던 시대에는, 특히 유럽에서는, 일상적인 아이의 양육은 나이가 더 많은 형제자매, 친척, 보모 등의 몫이었다. 대행 부모alloparenting로 불리는 이런 형태의 공동 양육은 상당히 임시변통적이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부모들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기를 안전하게 고정해두기 위해 온몸을 포대기로 감싸서 묶어 두곤 했다. 그러다 중세 이후에 공식적 성격을 띤 양육기관이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각지의 배치국placement bureau이 유아를 시골에 보내, 2~3세가 될 때까지(때로는 7세가 될 때까지) 그곳의 유모가 키우도록 했다. 1780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아기 2만1000명 가운데 1만7000명이 시골 유모의 손에 자랐다.
미국은 유럽과 사정이 달랐다. 종교적 신념, 유럽에 비해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청교도 부모들은 비교적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보냈다. 미국에서 양육을 감독하는 사람은 대개 아버지였다. 여성에게 자녀의 도덕성 발달을 맡기기에는 미덥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역사학자 C. 존 소머빌C. John Sommerville은 청교도인이 ‘최초의 현대적 부모’라고 말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F. 랜시David F. Lancy는 ‘최초의 근심하는 부모’라고 했다. 어쨌든 청교도 부모는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고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물론 하인과 노예의 도움이 컸다.)
그러던 중 산업혁명으로 남성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여성이 자녀 양육을 전담하거나 아이를 돌봐 줄 간호사와 보모의 고용이 늘어나면서 미국과 유럽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비튼 부인의 살림 요령Mrs. Beeton’s Book of Household Management>의 엄청난 인기는 이런 방식이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1861년에 발간된 이 베스트셀러는 어머니들에게 살림 방법이 아니라 하인에게 살림 지시를 내리는 방법을 소개했다.